시를 읽을 때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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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신의주 유동 박시봉방(南新義州 柳洞 朴時逢方) / 백석 *남신의주 유동에 사는 박시봉씨네 방이란 뜻으로 편지의 주소로 생각하면 됩니다. 옛날에는 하숙할 때 누구씨네 방이라고 표현했습니다. 그 주소지에서 누군가에게 쓴 편지글 형식의 시입니다.
 
어느 사이에 나는 아내도 없고, 또,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한 상태
아내와 같이 살던 집도 없어지고, *누워 기댈 터럭, 터전의 상실
그리고 살뜰한 부모며 동생들과도 멀리 떨어져서, *자상하고 다정했던 나의 가족들과도 멀리 떨어져 지내며
그 어느 바람 세인 쓸쓸한 거리 끝에 헤매이었다.
바로 날도 저물어서,
바람은 더욱 세게 불고, 추위는 점점 더해 오는데,
나는 어느 목수네 집 헌 삿을 깐, *이 목수가 아마 박시봉씨일 겁니다. 헌 삿을 깐, 삿자리. 즉 갈대를 엮어 만든 자리
한 방에 들어서 쥔을 붙이었다. *주인을 붙인다는 말은 주인집에 세를 들었다는 말
이리하여 나는 이 습내나는 춥고, 누긋한 방에서, *눅눅하다
낮이나 밤이나 나는 나 혼자도 너무 많은 것같이 생각하며, / 딜옹배기에 북덕불이라도 담겨 오면, *딜옹배기 : 둥글넙적하고 아가리가 넓게 벌어진 질그릇, 북덕불 : 짚이나 풀 따위를 태워 담은 화톳불. 싸구려불 * 얼마나 힘들었을까를 생각하게 됩니다.
이것을 안고 손을 쬐며 재 우에 뜻없이 글자를 쓰기도 하며, / 또 문 밖에 나가지두 않구 자리에 누워서, / 머리에 손깍지 베개를 하고 굴기도 하면서, *무기력한 화자의 모습
나는 내 슬픔이며 어리석음이며를 소처럼 연하여 쌔김질하는 것이었다. *쌔김질한다, 기억을 곱씹으며 자기반성을 의미
내 가슴이 꽉 메어 올 적이며,
내 눈에 뜨거운 것이 핑 괴일 적이며,
또 내 스스로 화끈 낯이 붉도록 부끄러울 적이며,
나는 내 슬픔과 어리석음에 눌리어 죽을 수밖에 없는 것을 느끼는 것이었다.
그러나 잠시 뒤에 나는 고개를 들어, / 허연 문창을 바라보든가 또 눈을 떠서 높은 천장을 쳐다보는 것인데,
이때 나는 내 뜻이며 힘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것이 힘든 일인 것을 생각하고, / 이것들보다 더 크고, 높은 것이 있어서, 나를 마음대로 굴려 가는 것을 생각하는 것인데,
이렇게 하여 여러 날이 지나는 동안에,
내 어지러운 마음에는 슬픔이며, 한탄이며, 가라앉을 것은 차츰 앙금이 되어 가라앉고,
외로운 생각만이 드는 때쯤 해서는,
더러 나줏손에 쌀랑쌀랑 싸락눈이 와서 문창을 치기도 하는 때도 있는데, *나줏손 : 저녁무렵
나는 이런 저녁에는 화로를 더욱 다가 끼며, 무릎을 꿇어 보며, / 어느 먼 산 뒷옆에 바우섶에 따로 외로이 서서, *바우섶 : 바위옆
어두워 오는데 하이야니 눈을 맞을, 그 마른 잎새에는,
쌀랑쌀랑 소리도 나며 눈을 맞을, / 그 드물다는 굳고 정한 갈매나무라는 나무를 생각하는 것이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백석 #남신의주유동박시봉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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