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그룹 형제의 난으로 경제계가 온통 시끄러웠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의 심사가 편할 리 없겠지만 이를 계기로 지배구조가 변화고 경영의 투명성이 높아졌으면 하는 이들이 많다. 롯데 그룹의 경영권 다툼을 보면 한 와인 기업이 생각난다. 롯데그룹 총수일가는 최악의 경우에도 경영권을 잃어버리지 않을 것으로 장담하지만 미국의 한 세계적인 와인기업은 오너 형제간의 다툼으로 다른 회사에 매각됐던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사건의 주인공인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Robert Mondavi Winery·사진)다. 로버트 몬다비(1913~2008)가 1966년 미국 와인 중흥이라는 기치 아래 캘리포니아의 나파 밸리에 설립한 이 와이너리는 전 세계에 미국 와인을 알린 주인공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탁월한 리더쉽의 소유자였던 로버트 몬다비는 스스로도 뛰어난 와인을 만들었지만 나파 밸리의 모든 와이너리들이 더 좋은 와인을 만들도록 큰 영감을 주고 독려해 결과적으로 나파 밸리를 세계적인 와인산지로 거듭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
로버트 몬다비는 특히 해외 유수의 와인명문가들과 합작으로 또 다른 명품 와인을 탄생시킨 것으로도 유명한데 오퍼스 원(Opus One), 루체(Luce), 오르넬라이아(Ornellaia), 세냐(Sena)와 같은 와인을 예로 들 수 있다.
로버트 몬다비는 두 아들을 두었는데 형인 마이클 몬다비(Michael Mondavi)는 부친의 사교성을 물려 받아 세일즈 분야에서 재능을 보였다. 동생인 팀 몬다비(Tim Mondavi·사진)는 와인 양조에 재능을 타고나 1976년부터 근 30년간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양조팀을 이끌었다. 그는 특히 로버트 몬다비의 해외 합작 프로젝트 와인의 성공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베테랑 와인 메이커로 유명하다.
만년에 로버트 몬다비가 고령으로 경영에서 멀어지자 그간 그를 도와 와이너리를 함께 이끌어 온 마이클과 팀은 와이너리의 경영과 비전을 둘러싸고 자주 마찰을 빚었는데 끝내 대립각을 좁히지 못 하며 결국 형제의 난과 다름 없는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를 계기로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는 위상이 급격히 추락해 마침내 2004년말 세계 최대의 주류기업인 컨스텔레이션 브랜드(Constellation Brands)에 매각된다.
매각이 이루어진 다음 해인 2005년이 되자 몬다비 패밀리는 1933년부터 한 해도 거르지 않고 가문의 이름을 건 와인을 만들어 온 빛나는 전통을 자칫하면 포기할 위기에 처하게 됐다. 미국의 와인산업을 대표해 온 가문이고 위대한 농부로 존경 받던 그들이기에 내부의 문제로 한 빈티지라도 와인을 만들지 못 한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대단한 심리적 압박이었다. 바로 이때, 팀 몬다비가 돌아왔다. 로버트 몬다비 와이너리의 와인메이커 시절에 양조팀을 총지휘하며 수십여 가지의 와인을 만들던 그가 ‘컨티뉴엄(Continuum)’이란 이름의 단 하나의 와인, 위대한 와인 패밀리의 부활이라는 단 하나의 목적을 들고 와인계에 돌아온 것이다.
2005년이 데뷔 빈티지인 컨티뉴엄은 몬다비 패밀리에게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계승’을 의미하는 컨티뉴엄은 단 하나의 포도밭에서 만들어지는 단 하나의 와인을 콘셉트로 삼아 생산량도 매우 제한적이다. 포도밭은 나파 밸리 중부의 동쪽 산맥에 자리한 프리차드 힐(Pritchard Hill) 지역에 있는데 이 곳은 콜긴(Colgin), 브라이언트 패밀리(Bryant Family) 등 미국의 간판급 컬트 와이너리들이 최고급 와인을 생산한다. 이곳은 또 이미 과개발 상태에 이른 나파 밸리에서 신규로 포도밭을 조성하는 것이 허용되는 몇 안 되는 곳 중의 하나이어서 신흥 컬트 와인의 요람이라고도 불린다.
나파 밸리 최고의 와인명문가의 아들로 태어나 나파 밸리와 이탈리아, 프랑스, 칠레 등을 오가며 30년 세월을 와인을 만들어온 팀 몬다비는 이 곳에 새롭게 25헥타르(ha) 규모의 포도밭을 조성하고 직접 포도를 재배하며 베테랑 와인메이커로서 절정에 오른 최고 장인으로서의 기량을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컨티뉴엄은 카베르네 소비뇽 품종을 중심으로 한 보르도(Bordeaux)풍의 블렌딩 와인이다. 다른 나파 밸리 와인들과 다른 점은 보조품종으로 사용하는 카베르네 프랑과 쁘띠 베르도 품종의 비율이 매우 높다는 점이다. 카베르네 프랑은 향의 발현성이 좋으며 쁘띠 베르도는 소량으로도 색과 풍미의 깊이를 더하지만 고품질의 포도와 뛰어난 양조실력이 뒷받침 되지 않으면 사용하기 어려운 배합비율이다.
컨티뉴엄은 구조적으로 강건한 와인이지만 이러한 배합비율 덕분에 숙성 초기에도 깊이 있고 원숙한 풍미를 지니고 있다. 블랙 커런트를 기반으로 장미꽃잎·연필심·으깬 돌과 같은 풍미가 복합적이며, 힘과 유연함이 적절히 조화를 갖춘 전형적인 고급 와인이다. 세계적 와인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첫 빈티지인 2005년 컨티뉴엄에 95점의 평점을 부여했다. 아직 와인계에서 널리 품질에 대한 검증을 거치지 않은 신흥 와인에 부여된 점수로는 이례적인 점수다.
위대한 가문의 전통을 계승한다는 것 이외에도 컨티뉴엄은 자연의 순환을 의미하기도 한다. 포도농사에서 1년 단위로 하나의 빈티지가 이루어지고 한 빈티지가 끝나면 어김없이 새로운 빈티지가 이전 빈티지를 계승해 가는 단순하지만 위대한 자연의 순환이 지니는 가치를 이름에 담고 있다. 팀 몬다비와 컨티뉴엄에 세계 와인계가 주목하는 이유는 그들의 영욕의 과거가 아니라 자연의 섭리에 대한 존경과 위대한 와인가문의 유산을 이어가려는 그들의 남다른 다짐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