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한 행사 담당 직원은 행사가 끝나자마자 버려지는 수백 달러의 꽃을 보며 생각했다.

꽃은 금방 버려지는데..
가격은 왜 이렇게 비쌀까?

그녀는 행사비 절감을 위해 직접 인근 꽃 농장에서 꽃을 사서 유튜브를 보며 꽃꽂이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본격적으로 꽃 시장을 연구했고 2010년, 저축금 4만 9천 달러(우리돈 약 5780만 원)로 온라인 플라워숍 '팜걸 플라워즈(Farmgirl Flowers)'를 차렸다. 별다른 외부 투자 없이 팜걸 플라워즈는 현재 100명 규모의 회사로 성장했으며, 작년 2천3백만 달러(약 271억)의 매출을 기록하며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좌) 크리스티나 스템벨(Christina Stembel) 팜걸 플라워즈 CEO
출처Farmgirl Flowers 홈페이지, Farmgirl Flowers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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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농장에서 자란 소녀, 단돈 5700만 원으로 사업에 뛰어들다

크리스티나 스템벨(Christina Stembel)은 미국 인디애나주 옥수수와 콩 농장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곤 대학 진학 대신 캘리포니아주로 넘어와 바리스타, 헤어 모델, 프론트 데스크 직원, 스탠퍼드 로스쿨의 동창 행사 책임자 등 다양한 일을 하며 돈을 벌었다.



하지만 그녀의 가슴 한 켠에는 늘 '사업에 대한 열망'이 있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모두가 뒷주머니에 사업 계획 하나쯤을 갖고 있죠(In San Francisco, everyone kind of has a business plan in their back pocket)". 스템벨이 미국 TV 채널 CNBC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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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미국 인디애나 주의 옥수수밭, (우) 흰 백합
출처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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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에 대한 열망을 실현하게 된 데에는 작은 계기가 있었다. 어느 날 스템벨은 어머니의 날(Mother's Day)을 맞아 온라인으로 어머니에게 줄 꽃을 주문했다. 장장 1시간에 걸쳐 마음에 드는 흰 백합꽃을 골랐지만, 며칠 후 녹색으로 잘못 염색된 백합이 배달 왔다. 원하는 색상과 배열의 꽃을 얻기 위해 그녀는 몇 번의 귀찮은 전화와 선택의 과정을 반복해야만 했다. 마침내 고심해서 고른 꽃을 받았을 때, 그녀는 홈페이지 사진과는 너무 다른 꽃의 모습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무언가 잘못됐다고 느낀 순간이었다.



2010년, 스템벨은 자신의 집 거실에서 팜걸 플라워즈를 시작했다. 사업을 시작했을 당시 스템벨은 자신의 명의로 된 신용카드 한 장 갖고 있지 않았다. 당연히 어느 은행에서도 신용을 얻지 못했고, 외부 투자금 없이 자신이 저축해둔 돈 4만 9000 달러로 성과를 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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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 스탠퍼드 대학교, (우) 크리스티나 스템벨
출처flickr, 팜걸 플라워즈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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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탠퍼드에서 일할 당시 꽃값을 절약하기 위해 직접 꽃꽂이를 했던 경험을 살려 인근 농장에서 매일 제철 꽃을 받아 직접 꽃다발을 만들고, 같은 지역의 고객들에게 자전거로 배달했다. 마케팅 예산을 아끼기 위해 매일 직접 커피숍과 네트워킹 행사지를 찾아가 자사의 꽃을 비치하고, 소셜미디어를 활용해 홍보를 진행했다. 그러자 하나둘 팜걸 플라워즈를 찾아오는 사람이 늘기 시작했다. 한 번 팜걸 플라워즈를 찾으면, 40%는 재구매로 이어졌다.



그 결과 팜걸 플라워즈는 매년 꾸준한 성장을 보이며 작년, 흑자 전환에 성공했다. 현재 팜걸 플라워즈는 캘리포니아에 큰 창고를 두고 약 90 명의 디자이너들과 함께 일하고 있으며, FedEx를 통해 하와이와 알래스카를 제외한 미국 전역에 48시간 내 빠른 꽃 배송을 하고 있다. 올해 예상되는 팜걸 플라워즈의 수익은 3200만 달러다(우리돈 약 379억 2000만 원).

집 거실에서 시작해 수백 억 매출 낸 꽃집의 비결

팜걸 플라워즈는 여타 온라인 플라워숍과 어떤 점이 달랐길래 외부 투자 없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사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1. 고객의 선택지를 과감히 제한..'사이즈'만 선택하세요

똑같은 꽃묶음이지만 사이즈만 다르게 판매한다. 평균 가격은 사이즈별로 50~100달러 사이다

출처Farmgirl Flowers 홈페이지

대부분의 꽃 도매상은 고객이 어떤 꽃을 살지 모르기 때문에 수백 가지가 넘는 꽃을 가져와 판다.때문에 절반 이상의 꽃은 선택받지 못한 채로 버려지는데, 바로 이 점이 꽃 가격을 비싸지게 했다. 팜걸 플라워즈는 꽃의 종류를 12~20개로 파격적으로 줄였다. 소비자의 선택지를 과감히 제한함으로써 팜걸 플라워즈는 버려지는 꽃의 비율을 1%까지 줄일 수 있었다.이렇게 절약한 비용으로 팜걸 플라워즈는 장미, 튤립 등 대량생산되는 흔한 꽃이 아닌 난초, 금어초와 같은 특별한 종류의 꽃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



팜걸 플라워즈의 고객은 꽃의 '종류'가 아닌 '사이즈'만 선택하면 된다. 팜걸 플라워즈에는 '빨간 장미 12송이'같은 것은 없다. 대신 매일 플로리스트가 제철 꽃으로 만든 소,중,대 사이즈의 꽃다발만이 있다. 또 타 업체들이 모두 비슷한 디자인의 꽃묶음을 제공하는데 반해, 팜걸 플라워즈는 꽃의 크기를 다르게 하거나 각각의 꽃 줄기 길이를 달리하는 등 다채로운 디자인을 선보인다.



2. "현지산 꽃만 판매, 정규직만 고용" 외부 충고 따르지 않던 뚝심

(좌) 캘리포니아 꽃 산지, (우) 샌프란시스코 꽃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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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캘리포니아의 농업의 90%는 꽃 산업이 주도했다. 하지만 1991년 '안데스 무역 특혜법(ATPA,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등 남미 4개국산 수입품에 대한 무관세 조치)으로 관세가 없어지면서 미국 꽃 농장주들은 남미에서 재배한 꽃들과 가격 면에서 경쟁을 할 수가 없게 됐다. 남미는 값싼 노동력과 더불어 미국에 비해 훨씬 약한 화학 규제 정책 덕분에 꽃 재배 비용도 훨씬 덜 들었다.때문에 캘리포니아가 미국에서 가장 큰 꽃 산지임에도, 대부분 수입산 꽃을 판매했다.



초기에 팜걸 플라워즈를 기웃거리던 투자자들은 대형 회사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팜걸 플라워즈도 값싼 해외 수입 꽃을 팔라고 충고했다. 하지만 스템벨은 100% 캘리포니아 현지산 꽃들만을 판매하며 지역 농부들과 공생하기로 결심한다. 그래야 훨씬 더 신선한 꽃을 소비자에게 제공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그녀는 언젠가 소비자들도 '꽃의 원산지'를 중요하게 따질 날이 올 것이라고 믿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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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flickr

팜걸 플라워즈는 주문을 받으면 바로 전 날 인근 농장에서 꽃을 가져와 오전에 배달한다. 샌프란시스코 지역은 자전거로, 그 외 지역은 FedEx를 이용한다. 덕분에 유통과정을 줄이고 농장에서 식탁까지 (Farm to Table)' 남들보다 훨씬 싱싱한 꽃을 배달할 수 있다.



투자자들은 경비 절감을 위해 계약직 직원을 고용하라고 충고했지만 스템벨은 이 역시 듣지 않았다. 그녀는 배달 직원을 포함한 전 직원을 정규직원으로 고용하며, 모두에게 건강보험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결단 탓에 팜걸 플라워즈는 투자자들에겐 외면받았지만 대신 충성 고객들과 성실한 직원들을 얻을 수 있었다.



3. 포장이 중요한 게 아냐..환경을 신경 쓰는 '개념 있는' 기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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팜걸 플라워즈의 삼베 포장
출처Farmgirl Flowers 인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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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은 시들면 언젠가 버려지기 마련이다. 꽃이 버려질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꽃을 감싸고 있는 비닐 포장지다. 일반적인 꽃집의 경우 비닐, 종이를 6~7겹으로 반복해서 겹친 후 꽃을 감싸고, 리본을 두른다. 꽃다발을 만들기 위해 화학 약품 처리를 하거나, 큰 꽃다발의 경우 바구니에 담는 경우도 있다. 이러한 과대 포장, 특히 비닐 포장은 완전히 분해되기까지 최대 1000년이 걸리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전 세계적 환경 오염의 주범으로 지적되어 왔다.



팜걸 플라워즈는 비닐 포장 대신 지역 커피 전문점에서 제공받은 커피 원두 포대자루를 포장에 사용한다. 포대자루로 꽃의 줄기 부분만 감싸는 식이다. 커피 포대자루는 삼베로 만들어지는데, 삼베는 자연 분해되기 때문에 환경을 전혀 해치지 않는다. 이렇듯 환경을 생각하는 착한 비즈니스를 펼치는 덕에 팜걸 플라워즈는 '친환경'을 추구하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에게 '개념 있는 기업'으로 다가갈 수 있었다.

인터비즈 김아현 윤현종
inter-biz@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