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손으로 암벽을 올랐을 때 쾌감이 짜릿해요." "일상의 스트레스를 날려 버릴 수가 있어요~!"
 
같은 암벽을 오르지만 바위 틈새에 쇠붙이를 박거나, 줄에 매달리는 등의 기구를 사용하지 않는 게 볼더링(bouldering)의 특징이다. 손끝, 발끝만으로 바위와 교감하고 무언의 대화를 나눈다는 뜻이다. '네 발'로 기어오르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를 실현하는 운동 장르로도 정의된다. 볼더러들은 이구동성으로 성취감과 집중력 강화를 장점으로 꼽았다. 부산의 실내암장 락오디세이(cafe.naver.com/rockodyssey) 김영화(40) 센터장의 도움말로 볼더링의 묘미를 알아봤다. 
 


  
 

■정직하고 자연친화적인 '맨손' 운동
 

볼더링 장비는 단출하다. 암벽화를 신고 맨손으로 4~5m 높이 바위를 기어오르다 실패하면 추락방지용 크래시패드 위로 떨어지면 끝이다. 손이 미끄러지는 걸 방지하는 초크주머니를 허리춤에 차는 게 전부다. 맨몸으로 바위에 덤비는 꼴이니, 이걸 두고 "참 정직하다"고 해야 할까? 인간의 등정 본능을 가장 적나라하게 표현한 운동인 셈이다.  

혹시 장갑은? 장갑을 끼면 더 안 된단다. 피부가 바위 표면과 교감하는 게 중요한데 방해되어서다. 그래서 화강암이나 퇴적암의 까칠한 표면에 쓸려 손가락이 너덜더덜해지기 일쑤다. 손바닥을 펴보면 지문이 닳아 없어진 사람이 꽤 된다.  

따라서 바위에 볼트를 박고, 자일을 걸고 높은 바위를 오르는 암벽등반이 인공적이라면, 볼더링은 참 자연스럽다. 사람의 안전을 위해 바위에 상처를 남기지 않는 것이다. 대신, 지나가다 이 바위가 좋다 싶으면 그냥 매트를 깔고 오르는 식이다. 자연친화를 강조하는 전위적인 볼더러들은 암벽화조차 거부한 채 맨손, 맨발을 고집하기도 한다. 심지어 초크가루조차 남기기 싫어 깨끗이 닦아 놓기도 한다고. 

■"짧은 쾌감…스트레스 해소에 딱~!" 

김 센터장은 "짧은 성취감을 많이 느낄 수 있는 장점"이라고 했다. 4~5m급 비교적 낮은 바위를 타면서 놀 수 있어서다. 지구력을 갖고 긴 구간을 오르는 암벽등반과의 차이점이다. 속도 경쟁은 하지 않고 루트를 찾아내 완등하는 데 의의를 둔다. 

근력이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렇다고 남자가 꼭 잘한다는 보장이 없다. "힘, 유연성, 밸런스, 리듬, 정신력이 골고루 필요하기 때문에 남자보다 잘하는 여자들이 많습니다."

키카 크다고 해서 유리하지도 않다. 쪼그리는 자세에서 불리하기 때문. 또 어린이들도 몸이 가벼워 날다람쥐처럼 거뜬하게 높은 바위를 오를 수 있다고. 남녀노소가 고루 즐길 수 있다는 건데, 그럼 이런 걸 '1박 2일'에서 한 번 다뤄 보면 어떨까?  

■"금정산 개구리와 레슬링?" 

주말인 지난 5일 금강공원 소림사 앞뜰. 추락에 대비한 커다란 크래시패드를 등짐으로 짊어진 락오디세이 회원들이 모였다. 남부여대한 모습이 좀 우습다. A자 모양으로 갈라진 틈 때문에 'A볼더'로 명명된 바위 밑에 널따란 패드를 깔아 놓으니 "레슬링하러 왔나?"며 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신기해한다. 
볼더링은 힘뿐만 아니라 유연성, 균형감각, 리듬, 정신력이 골고루 쓰이니 여성이나 어린이라고 불리하지만은 않다. '락오디세이'의 정숙희 코치가 초등 4년 아들 김동호 군과 금강공원의 바위를 타고 있다.
불경 소리가 나지막히 울려퍼지는 가운데 도전이 시작됐다. 오른쪽에서 왼쪽 끝으로 대각선 모양으로 '트래버스(가로지르기)'해서 완등하는 게 오늘의 과제다. 초기 도전자들은 헉~헉~ 거친 숨을 몰아쉬다가 외마디 비명을 남긴 채 추락. 발 디딜 곳 없이 깎아지른 바위를 가로지르는 게 쉬울 턱이 없다. 하지만 회사원 송명국(47) 씨가 단숨에 성공해서 박수갈채. 그는 "2~3분 만에 짧게 성취감을 느낄 수 있어 좋고 집중을 하니 스트레스가 해소된다"고 했다. 운동도 되고 해서 주 2~3회 실내 암벽을 타면서 몸을 만든다고 했다. 

두 번째 도전지는 'A볼더'의 다른 쪽 사면. 김 센터장이 완등해서 '프로그(개구리)'라고 명명한 루트다. '개구리'를 껴안고 올랐던 수많은 도전자들이 고배를 마셨다. 110도 정도 기울어진 바위라서 만만치 않다. 실패와 성공이 반복되는 가운데 '젊은 피'들이 도전에 나섰다. 김 센터장의 자녀인 예솔(15·중2) 양과 동호(11·초4) 군.  

"하늘에 가까워지는게 좋아요…!" 3m 남짓한 직벽을 날다람쥐처럼 훌쩍 기어 오른 뒤 예솔 양이 남긴 고고성이다. 구경꾼들까지 가세해 큰 박수~!  

부산의 볼더링 마니아들은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 바위를 탄다. 락오디세이 회원 100명 중 반 정도가 즐긴다고.  

■금정산, 내원사… 볼더링의 전설 

부산에서는 2007년께 처음으로 바위타기가 시작됐다. 원어민들이 시작했고 흥미를 가진 한국인들이 의기투합해서 루트를 개척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발굴된 내원사 계곡과 금정산 너덜겅은 국내에선 전설로 남았다. 

독일 FAU부산캠퍼스 크리스토프 린덴베르거 부총장은 선구자다. 그가 내원사 계곡의 거대한 직벽들을 발굴하고 완등한 뒤 '내원사 계곡 가이드북'을 만들면서 볼더링에 대한 관심을 촉발시켰다. 그 덕분에 내원사 계곡에서는 지난해 볼더링 축제까지 열렸다.  

금정산 제3망루 반경 2㎞내 나비바위 주변에는 다양한 난도의 바위가 몰려 있어 한마디로 노다지다. 내원사 계곡도 마찬가지.  

요즘은 지리산 계곡이 뜨겁다. 중산리 계곡에서 시작해 대원사 계곡, 내대 계곡 구석구석 볼더링 마니아들이 찾아다니며 개척에 열을 올리고 있다.  

부산에서 활동중인 전문 볼더러 중엔 전도사를 자처하는 김영화 락오디세이 센터장이 있다. 경찰대를 졸업하고 11년간 경찰 간부로 재직하다 "정말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어서" 암벽등반으로 전향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 그는 최근 이기대공원 해안가에서 난도가 높은 바위들을 찾아내는 등 독보적인 활동을 펼치면서 '볼더링코리아' 페이스북 그룹에 자료를 올리고 있다.  

내·외국인들은 한결같이 부산 근교가 볼더링하기에 좋다고 입을 모은다. 볼더링 명소가 되려면 여러 난도의 바위가 몰려 있어야 하는데, 부산 근교는 이에 적합하다는 것이다. 김 센터장은 "물론 프랑스나 남아공의 거대한 바위군들의 규모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도심 접근성이 특히 좋아서 부산 근교에서 볼더링이 더 발전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문의=김영화 센터장(010-4190-4592). 

김승일 기자 dojune@busan.com 

사진=정종회 기자 jj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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