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산하 - 부화

2005년 03월 04일
알 속에서는
새끼가,
껍질을 쪼고
알 밖에서는
어미새가,
껍질을 쫀다

생명은
그렇게
안팎으로 쪼아야
죽음도
외롭지 않다


- 이산하의 시 '부화' 전문



** 더불어 이루는 깨달음 
불가의 화두 중에 ‘줄탁동시’ 혹은 ‘줄탁동기’라는 말이 있습니다. "벽암록"에 나오는 이야기지요. 어미 닭이 알을 품고 있다가 때가 되면 병아리가 안에서 껍질을 쪼게 되는데, 이것을 ‘줄’이라 하고, 어미 닭이 그 소리에 반응해서 바깥에서 껍질을 쪼는 것을'탁'이라고 한답니다. 그런데 이'줄탁'은 어느 한쪽의 힘이 아니라 동시에 일어나야만 병아리가 온전히 하나의 생명체로서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껍질 안의 병아리가 힘이 부족하거나, 반대로 껍질 바깥 어미 닭의 노력이 함께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병아리는 죽음을 면치 못하게 되지요. 껍질을 경계로 두 존재의 힘이 하나로 모아졌을 때 새로운 세상이 만들어진다는 이 비유를 불가에서는 참다운 사제지간의 관계를 말할 때 곧잘 인용하곤 합니다. 깨달음이란 스승과 제자가 더불어 이룬다는 거죠.

결국 이 세상은 혼자의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과 타인의 관계 속에서 형성된다는 것을 이 시를 읽으며 다시 생각해 봅니다.
 
댓글은 로그인 사용자만 작성 가능합니다. 로그인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