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깎는 시간 / 김기택

이온디
2007년 08월 20일

이발사는 희고 넓은 천 위에

내 머리를 꽃병처럼 올려놓는다.

스프레이로 촉촉하게 물을 뿌린다.

이 무성한 가지를 어떻게 전지하는 게 좋을까

빗과 가위를 들고 잠시 궁리하는 눈치다.

이발소는 시계 초침 소리보다 조용하다.

시계만 가고 시간은 멈춘 곳에서

재깍재깍 초침 같은 가위가 귓가에 맑은 소리를 낸다.

그 맑은 소리를 따라간다. 가위 소리에서

찰랑찰랑 물소리가 나도록 귀 기울여 듣는다.

싹둑, 머리카락이 가윗날에 잘릴 때

온몸으로 퍼지는 차가운 진동.

후드득, 흰 천 위에 떨어지는 머리카락 덩어리들.

싹둑싹둑 재깍재깍 후드득후드득......

가위 소리는 점점 많아지고 가늘어지더니

창밖에 가득 빗방울이 떨어진다.

흙에, 풀잎에, 도랑에, 돌에, 유리창에, 양철통에

저마다 다른 빗소리들이 서로 겹쳐지는 소리.

수많은 다른 소리들이 하나로 모이는 소리.

처마에서 새끼줄처럼 굵게 꼬이며 떨어지는 소리.

물뿌리개로 찬물을 흠뻑 부으며

이발사는 어느새 내 머리를 감기고 있다.

수건으로 물기를 닦아내고 만져보니

머리가 더 동글동글하고 파릇파릇하다.

비 온 뒤의 풀잎처럼 빳빳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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