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부터 홍순기, 박희성.
2003년부터 UX 디자인 전문 회사를 내걸고 활동한 이노이즈인터랙티브(이하 이노이즈). 지금이야 UX 디자인이란 말이 익숙하지만 당시에는 이 생소한 용어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모르는 기업이 많았다. 핸드폰 안테나 표시 옆에 어느 통신사인지 알 수 있게 조그맣게 행복 날개를 달아준 회사가 바로 이노이즈다. 이후 경쟁사도 바로 따라 했다. 현재 우리는 알게 모르게 많은 디지털 기기 속에서 이노이즈의 UX 디자인을 만나고 있다. 이곳을 이끌고 있는 건 1990년대 중반부터 국내 1세대 디지털 미디어 디자이너로 활약해온 박희성, 홍순기 공동 대표다. 부침이 잦은 디지털 미디어업계에서 조용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는 이들의 비법이 궁금해졌다.
두 분은 대학 선후배 사이인 걸로 알고 있습니다. 편집, 아이덴티티 등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 영역이 아닌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 발을 내딛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디자인은 시대의 흐름과 같이합니다. 저희가 대학에 다니던 시절에는 디지털이란 걸 배울 수 없었어요. 대학교 3학년 때인가 편집 디자인 수업 시간에 교수님이 외국에서 인터넷 하는 전문가를 데려왔어요. 지금 생각하면 웹 디자이너인데 ‘인터넷 하는 사람’이라고 표현한 거죠. 당시에는 PC 통신만 있었으니까요. 학교에서 부분적으로 접하긴 했지만 이 분야가 산업적으로, 직업적으로 어떻게 발전할지 예측할 수 없었습니다. 방과 후 컴퓨터로 이것저것 그려봤지만 이게 디자인이 되고 돈이 될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미처 못한거죠.
동기며 선후배며 모두 편집 디자인을 기반으로 한 회사에 다니고 있을 때였으니까요. 그때 한 회사에서 웹 디자인을 부록으로 해주면 편집 디자인 작업까지 맡겨주겠다는 제안을 받았습니다. 당시에는 이미지를 가운데 정렬, 왼쪽 정렬만 맞춰 넣으면 되는 코딩 수준의 작업이었거든요. 하지만 그런 컴퓨터 언어 안에서도 디자인을 도입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투명한 이미지를 넣어 선을 맞춘 것처럼 보이게 하거나 작은 이미지를 일부러 400%로 확대해 픽셀이 보이게 디자인하는 등 웹 안에서 남이 보기에 전혀 새로운 화면을 보여준 거죠.
삼성 프리미엄 아이콘, 2005 클라이언트: 삼성전자 삼성전자의 모든 제품에 동일하게 사용할 아이콘 디자인에 대한 의미 기획 및 형태 디자인을 진행한 프로젝트. 총 250개 아이콘 라이브러리를 구성하기 위해 제품마다 원하는 아이콘의 요구 사항을 분석하고 개념을 정의했으며 이에 따라 아이콘을 디자인했다. 삼성전자 제품의 고급스러운 아이덴티티 가치를 확고히 했던 작업이다.
전통적인 그래픽 디자인과 새로운 디지털 미디어는 어떤 점이 서로 다르게 느껴졌나요? 사실 당시 처음 접한 건 웹이 아니라 인터랙션이었다고 생각해요. 기호학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포스터 같은 평면 작업과 달리 디지털 분야는 리 액션이 없으면 디자이너의 의도를 파악하기 어렵습니다. 당시 통신 속도가 굉장히 느린데도 박희성 대표는 코딩이란 기술을 디테일하게 구현했어요. “이미지가 빨리 떠야 해. 10킬로바이트 안에 해결해야 해.” 이런 미션이 일종의 게임처럼 느껴졌어요. 기술적 제약 안에서 디자인을 딱 만들어내면 사람들은 ‘대체 이걸 어떻게 했지?’ 궁금해했죠. 지금 역시 기술적 한계에 늘 부닥치고 있지만, 그 한계가 일하는 재미를 배가시킵니다.
박희성 대표는 국내의 대표적인 디지털미디어 1세대로 알려져 있습니다. 1990년대 초ㆍ중반에 디지털 미디어를 접하면서 어떤 경험을 하셨나요? 디지털 미디어 1세대가 대체로 1972~74년생입니다. 1990년대 중반에 등장한 전설적인 사이트 ‘스폰지’의 틀을 제(박희성)가 디자인했어요. 닉스, 지오다노 같은 패션 브랜드 사이트도 했지요. 연예인 최초로 웹사이트를 만든 사람이 서태지인데, 서태지닷컴도 제가 디자인했습니다. 당시에는 웹사이트 제작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아서 억 단위의 프로젝트가 많았어요. 이후 폭발적으로 디지털 미디어 분야 디자이너가 많아졌지요. 디자이너가 모두 사장님이 됐습니다. 편집 디자인에 비해 큰돈을 벌 수 있는 데다 1990년대 말 벤처 붐까지 일었거든요. 젊은 사람이 비즈니스하기 좋은 시절이었습니다. 지금은 웃으면서 이야기하지만 당시에 디자인하고 개발하고 기획하고 어떤 때는 작가, 일러스트레이터까지 섭외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일을 한 게 나중에 회사를 창업하는 데 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홍순기 대표님은 2002년부터 2003년까지 FID에서 뉴미디어 사업본부장을 맡았습니다. FID는 직원이 400여 명일 정도로 거대한 디지털 미디어 에이전시였는데, 2003년 갑자기 부도가 났습니다. 그때의 경험이 지금 회사를 운영하는데 어떤 도움을 주나요? 좀 늦게 입사해서 FID가 굉장히 화려하던 시기의 끝부터 경험했습니다. 곧바로 부도가 났지만요. 뉴미디어 사업본부장을 맡았는데, 제(홍순기) 밑으로 직원이 100명이나 있었습니다. 디자인 회사인데 직원이 400명에 달하는 거대한 규모를 자랑했지요. 당시 벤처 붐이 일면서 업계에서 ‘상장’이 큰 이슈였습니다. FID가 가장 먼저 상장한 디자인 회사로 알려져 있지만 사실은 상장에 실패했기 때문에 고꾸라졌다고 봐야 할 거예요. 기형적으로 계속 붙는 근육을 척추가 버티지 못하는 상황이었거든요. 척추를 고칠 돈이 들어오는 통로가 바로 상장이었어요. 상장 실패로 사람들이 모두 그만두자 바로 일이 끊겼고 결국은 임금이 체불되는 상황까지 이르러 문을 닫게 된 겁니다. 사실 제가 FID에 잠깐 있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야기 할 자격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디자이너가 회사를 운영하면서 하지 말아야 할 것에 대해서는 확실히 배웠습니다. 회사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가 있다는 걸 인정해야 합니다. 현재 이노이즈 직원이 60여 명으로 규모가 조금 커지긴 했지만 우리의 한계치를 굉장히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편이에요.
이노이즈 미디어보드 위드 네이버 (Innoiz Mediaboard with Naver), 2007 클라이어트: NHN 청계천에 설치된 터치 기반의 미디어보드. NHN이 정보를 제공하고, 삼성SDS가 기술을 개발했으며, 서울시가 설치 지원한 프로젝트다. 이노이즈는 UX 기획 및 디자인에 참여했다. ‘공간 속에서 물이 흐른다’와 ‘시간 속에서 정보가 흘러간다’는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흐름’이라는 UX 콘셉트로 진행했다.
2003년 5월 27일 홍대 근처의 작은 사무실에서 6명이 함께 시작한 게 이노이즈입니다. 당시에는 홍순기 대표님의 단일 체제였는데요. 그때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2003년 설립해 올해 11년째 이노이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FID 시절 고객과 한 약속을 지키고 싶은데 FID는 황망하게 사라졌고, 그래서 얼결에 제(홍순기)가 바로 회사를 차리게 됐습니다. 삼성전자, SK텔레콤이 2G폰을 출시할 때부터 함께 일하기 시작해 3G폰 출시하는 것까지 봤습니다. 당시에는 UX 디자인을 모르는 클라이언트가 많았어요. 지금은 UX 디자인이란 말을 일반적으로 사용하지만 당시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이 분야를 세상에 알리고 싶은 마음이 컸습니다.
2011년부터 홍순기, 박희성 공동 대표 체제로 이노이즈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노이즈에서 두 분이 함께하게 된 계기 가 궁금합니다. 우리는 3학번 터울의 대학 선후배 사이입니다. 운명 같은 선후배예요. 당시 남자 대학생 사이에서 나이트가 유행이었는데, 우리는 오락실 가는 걸 좋아했어요. 성향이 비슷한 거죠.(웃음) 더구나 둘 다 집이 인천이라 지하철 타고 등하교를 같이 하면서 더 친해졌어요. 어떻게 보면 제가 이노이즈를 설립한 뒤에 박희성 대표가 뒤늦게 합류한 모양새인데, 흔쾌히 승낙해줬습니다. 저(홍순기)는 대표할 사람이 아닌데 그냥 총대를 멨다고 봐요. 디자이너를 위한 플레이그라운드를 만들고 싶은 생각이 컸거든요. 박희성 대표는 대학 다닐 때부터 디자인 잘하기로 워낙 유명했습니다. 더구나 좋은 디자인 회사를 만드는 일에도 적극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먼저 공동 대표를 제안해서 2011년부터 함께 이노이즈를 이끌고 있습니다. 전체적인 경영과 업무를 같이 담당하지만, 주로 내부적으로 플래닝 파트는 제가, 디자인 파트 박희성 대표가 담당합니다. 우리가 잘하는 일이 방관이에요. 가능한 한 서로 터치하지 않습니다. ‘너는 너, 나는 나’ 이런 뜻이 아니라 서로 믿는 대신 효율과 힘이 생긴다는 의미입니다.
이노이즈의 첫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요? 디지털 미디어가 흑백에서 컬러로 넘어오는 과정에 이노이즈가 생겼습니다. 화면이 커지고 색상도 들어가자 개발자 중심의 인터페이스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알게 된 시기죠. 핸드폰을 열면 1번 전화번호부, 2번 알람, 3번 벨소리 등을 표현한 아이콘 9개가 화면에 주르르 뜨던 때가 있었어요. 이 아이콘을 좀 남다르게 하고 싶은 욕구가 제조사마다 있었습니다. 당시에 칩 기능이 떨어지니까 그래픽 이미지를 많이 넣으면 속도가 느려졌어요. 영상, 애니메이션을 제작하는 3D 디자이너가 작은 아이콘을 만드는 것은 어려우면서 쉬운 일이었습니다. 이 아이콘을 그래픽 디자이너가 리터치해서 보여줬더니 클라이언트들이 ‘와, 3D로 돌린 것 같은데?’라며 좋아했습니다. 그래픽적으로 풍부해 보이면서 구동도 빨리 되는 디자인이었는데, 사실은 페이크죠. 그럼에도 사람 들은 이 이미지만으로 기계 자체의 사양이 좋다고 느꼈습니다. 좀 과장해 말하자면 일종의 경험 디자인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 품질뿐만 아니라 제품 성능이 더 좋은 것처럼 느끼는 경험까지 디자인으로 해결했으니까요.
이노이즈 폴리(Innoiz Poly), 2011 이노이즈 폴리는 평면적인 사진을 입체적인 도형으로 재창조해 사용자가 조형미를 경험하고 즐길 수 있도록 한 애플리케이션이다. 1934년 수학자 보리스 들뢰네(Boris Delaunay)의 ‘삼각 측량’에서 영감받은 이미지 다각화 애플리케이션으로 일본 굿디자인 어워드에 선정됐다.
이노이즈가 성장할 수 있었던 대표적인 프로젝트를 알려주세요. SK텔레콤은 통신망을 구축하는 회사라는 이미지가 강했어요. 우리는 소비자가 SK텔레콤을 사용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는 경험을 화면에서부터 주고 싶었어요. 안테나 표시 옆에 SK텔레콤의 행복 날개를 조그맣게 붙였습니다. ‘SK텔레콤의 전파야’라는 걸 알 수 있게 말이죠. 이걸 보고 KT도 안테나 표시 옆에 ‘올레’라고 쓰더군요. 예전 핸드폰을 보면 4방향 버튼에 둘러싸인 중앙 버튼이 있습니다. 똑같이 SK텔레콤을 사용하지만 제조사에 따라 이 가운데 버튼에 OK, BACK, CALL 등의 단어를 제각각 넣어 사용했어요. 이노이즈는 그 가운데 버튼에 네이트(nate)를 넣자고 제안했습니다. 여기에서 시작해 네이트 화면의 색상과 구조까지 모두 만들었습니다.
처음에 회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우리 역시 창업할 때 도움받을 사람이 아무도 었습니다. 생업이 달린 문제인데 세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계약서는 어떻게 작성해야 하는지 하나도 몰랐어요. 건설, 법조계 같은 분야는 서로 상생할 수 있는 생태계가 이미 만들어져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디지털 미디어 분야는 디자이너의 노력을 시장이 알 수 있는 표준적인 규칙을 만드는 데 실패했습니다. 디자이너의 크리에이티비티에 대한 대가가 정확히 무엇인지 객관화하지 못한 점은 우리 잘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클라이언트, 법률 회사와 자주 다투었어요. 의례적으로 보내주는 계약서에 우리는 빨간 펜으로 일일이 수정해서 몇 번씩 다시 보냈거든요. 우리 작업을 왜 여기저기 다 사용하는지, 포토샵 파일은 왜 달라고 하는지 등을 꼬치꼬치 따졌습니다. 설계도를 함부로 넘기는 건축 사무소는 없습니다. 심지어 책 표지도 1권, 2권 숫자만 바뀌어도 이에 대한 대가를 받습니다. 생존과 직결되는 포토샵 파일을 달라고 한다고 그대로 클라이언트에게 넘겨 버리면 디지털 미디어의 생태계가 절대 생기지 않아요. 저작권, 로열티에 관한 부분은 우리가 여전히 가장 많이 싸우는 부분입니다.
다른 분야에 비해 규모가 크기 때문인지 유독 디지털 미디어 디자인 기업 대표는 스스로를 경영자로 정의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회사 규모는 커지는데 경영자가 계속 크리에이티브에 관여하는 것도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경영자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사이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아요. 디자인 회사라면 말 그대로 두 가지 일을 해야 합니다. 디자인을 잘하면서 회사로서도 존립해야 합니다. 그런데 디자인만 잘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반면 재무재표는 아주 좋은데 디자인을 안 하는 경우도 있어요. 재무재표를 만들기 위해 디자인을 할 뿐이죠. 이 두 가지를 어떻게 조합하느냐가 핵심입니다. 디자인을 계속 할 능력이 있으면서 동시에 월급을 주는 회사 기능도 해야 합니다. 다른 시도를 하고 싶어도 회사에 큰 타격을 줄 것 같다면 무리해서 점핑하지 않습니다. 지난 10년 동안 계속 이걸 조율해왔고, 이렇게 하면 앞으로 10년은 더 버틸 수 있다는 걸 배웠습니다.
삼성 스크린 세이버, 2006 클라이언트: 삼성전자 삼성 노트북 센스에 기본으로 탑재된 스크린 세이버. 기존 스크린 세이버가 색의 다양함이나 픽셀의 미려한 형태감으로 기술적인 우월성을 강조하는 방식이었다면 이 스크린 세이버는 공간적 자유로운 경험과 소통에서 얻는 교감 등을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감성적인 측면에서 제품의 가치를 높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웹 에이전시로 시작한 많은 디지털 미디어 회사가 현재 크로스 미디어 회사, 광고 대행사 등 끊임없이 정체성을 바꾸고 있습니다. 이노이즈는 스스로를 어떤 회사라고 정의 내리나요? 이노이즈는 UX 디자인 전문 회사입니다. 설립 초기부터 지금까지 이노이즈는 ‘UX 디자인’이란 표현을 떼어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좀 더 제한을 두자면 디지털 디바이스에서의 경험입니다. 사용자들이 디지털 디바이스를 사용하면서 어떤 경험을 할지 설계하고 계획해주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포스터가 한 접시 음식이고, 영상은 여러 가지를 차례로 먹는 코스 요리라면, UX는 풀빌라예요. 우리가 휴가를 다녀와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했는지 기억하기보다 ‘잘 쉬고 왔어’, ‘더웠어’ 등으로 총체적인 경험을 이야기하잖아요? UX는 경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경험에도 수준이 있습니다. 새로운 경험이 너무 낯설기만 하다면 문제겠죠. 시대의 흐름에 맞으면서 고객이 접했을 때 즐길 수 있는 수준에 맞추려고 합니다.
지난 5월 이노이즈 11주년을 맞아 이노이즈에 큰 변화가 있었습니다. 합정동에 이노이즈 사옥인 BCC(Be Created for Creator) 세워졌는데요,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직원이 늘어나니 덩달아 임대하는 사무실도 4개층으로 늘어나 월세 부담이 컸습니다. 돈이 없어서 지은 거예요. 은행의 도움이 컸죠.(웃음) 유이화 건축가가 설계한 BCC에는 두 가지 디자인 원칙이 있습니다. 효율적이고 신기할 것. 가운데 계단을 사이에 두고 건물을 양분한 구조라 모두 신기해했습니다. 처음에는 새 건물이라 일단 모두 만족했지만 낯선 것에 익숙해지려니 점차 불만도 생기고 있어요. 호불호의 문제가 아니라 이 공간이 이전 공간과 ‘다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노이즈는 프랑스어 수업 얼쑤외국어 교육, 단체 간식 시간인 화목한 간식, 단체 국민 체조 등 회사 생활을 즐겁고 유쾌하게 할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두 분이 생각하는 이상적인 회사는 어떤 모습인가요? 단체 체조 시간은 너무 앉아서 일만 하는 것 같아서 장난처럼 시작했는데 진짜 효과가 있더라고요. 처음에는 난처해하며 주저하던 직원들도 이젠 음악이 나오면 자연스레 의자에서 일어나 따라 해요. 외국어 수업은 우리 스스로 필요한 능력이라고 생각해서 교양 차원에서 진행하고 있습니다. 이노이즈는 야근을 잘 안 하는 회사로 업계에 알려져 있지만 야근을 부정하는 회사는 아닙니다. 다만 밤늦게 들어가 아침 11시에 출근하는게 싫어요. 박희성 대표는 개인 스튜디오를 운영할 때도 아침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면 퇴근하는 스케줄을 지켰습니다. 더 할 일이 있다 해도 6시에는 집에 갔습니다. 업무 시간에 열심히 일했으니까요. 일과 삶의 균형을 잃지 않았으면 합니다. 이노이즈가 균형 잡힌 회사였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또한 균형 잡힌 사람이었으면 하고요.
SK텔레콤 서비스 앱의 아이덴티티 가이드라인, 2012 클라이언트: SK텔레콤 SK텔레콤 서비스 앱의 아이덴티티 통합을 위해 시각 법칙 규정 및 UX 철학을 기준화한 프로젝트. 각기 다른 모바일 서비스가 추구하는 디자인 스타일을 인정하는 동시에 SK텔레콤만의 통일된 브랜드 가치를 확립하고자 했다. T 심벌마크 모양 런쳐 아이콘과 스플래시 화면을 중앙에 동일하게 위치시키는 대담하고 간략한 법칙을 통해 서비스 각각의 자율성과 T 브랜드의 통일성을 조화롭게 완성시켰다.
디지털 미디어 영역은 신기술이 빨리 적용되고 빨리 평준화되는 분야입니다. 급속하게 변하는 기술 정보를 어떻게 따라 잡나요? 기술을 꼭 공부할 필요는 없어요. 그저 도구라고 생각할 뿐입니다. 이보다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고 반응할지 알고 싶어요. 기본적으로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서 일하는 디자이너로서 업계에서 벌어지는 기술을 즐기는 편입니다. 굳이 따라가려 애쓰지 않아도 신기술이 생기면 클라이언트가 제일 먼저 이야기해줘요. 우리를 찾아와 “이런 기술이 있는데 어떻게 사용할까요?”라고 묻습니다. 덕분에 세상에 나오지 않는, 죽은 기술도 많이 알아요.
오랫동안 디지털 미디어 분야에 종사해 오셨습니다. 스마트폰 등장 이후 디지털 환경이 급격한 변화를 겪고 있습니다. 이런 변화에 이노이즈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요? 예전에는 사용성을 제일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이젠 디바이스의 사용성이 나빠 불쾌한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UX 디자인을 두고 ‘사람이 편하게 쓰는 거예요’라는 식으로 설명한다면 고루한 표현이에요. 사용성에도 여러 가지 단계와 니즈가 있습니다. 사람마다 원하는 게 다르니까요. 15살 학생과 70대 할머니가 원하는 게 다른데 하나의 사용성만 제안하는 건 안일하다고 봅니다. 사용성의 획일화가 아니라 더 개인화되고, 더 집중적이고, 더 매니악적인 방향을 지향해야 합니다. 이노이즈 내부적으로 ‘컬러(color)’의 ‘C’자를 붙여서 ‘UXC’라는 표현으로 바꿔 부릅니다. 기능만 강조된 UX가 아니라 시각적인 디자인 본질에 충실하자는 의미입니다. 모든 대상에 적합한 UX 디자인을 하면 개성도 매력도 없는 무색의 결과물이 나오기 때문에 좀 더 구체적인 대상에 매력적인 UX 디자인을 하자는 뜻입니다. 이노이즈는 UX가 ‘User Experience’가 아니라 ‘Your Experience’가 되게 하려고 합니다. 3인칭이 아니라 ‘당신’이라는 2인칭으로 다가가려는 거지요.
이노이즈는 자전거 전문 편집 매장 르벨로(LeVelo)도 직접 운영하고 있습니다. 몰튼(Moulton), 브룩스(Brooks) 등 프리미엄 자전거를 소개하는 곳입니다. 자전거 유통 사업을 하게 된 계기가 있나요? 자전거 유통 사업으로 소위 ‘대박’이란 걸 낸 상태 는 아니지만 국내에 자전거 문화가 생성되는 데 많은 부분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사업의 기본은 돈을 버는 것이지만 돈만 벌려고 르벨로를 시작한 건 아니에요. 브룩스를 전개하는 셀레로얄사는 직원이 수천 명에 달하는 회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회사들이 우리에게 자극을 많이 받아요. 자전거 관련 액세서리를 개발하기도 하고, 구매를 하면 패스포트를 만들기도 합니다. 자전거를 기반으로 다양한 경험을 만드는 거지요. 더구나 디자인의 가치를 알리는 데 도움이 되고 있어요. 사실 프리미엄 자전거 브랜드에는 나이 지긋한 대표가 대다수라 이메일 확인도 제대로 못하는 곳이 많아요. 그런데도 르벨로에 관심이 있습니다. 유통을 브랜딩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소 이야기하는, 고객을 대하는 태도나 고객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를 디자인적 관점에서 접근해 자전거 유통에 녹여냈습니다. 우리가 옳다고 믿는 것을 르벨로를 통해 실현해본 거죠.
SK텔레콤 QR코드, 2011 클라이언트: SK텔레콤 도형을 인식해 정보화하는 기술적 관점에서의 QR코드가 아니라 사람이 형태를 보고 정보를 상상할 수 있는 사용자 관점에서의 QR코드 디자인으로 바꾼 프로젝트. 기존 검은색 픽셀 타입의 암호화된 QR코드 형태 대신 SK텔레콤 아이덴티티에서 추출한 T 조각들로 재정의하고 조합했다. 기존 QR코드와 다른 독특하고 감성적인 형태가 인상적이다.
이노이즈도 11년 된 디자인 회사입니다. 현재 무엇을 고민하는지 궁금합니다. 또한 앞으로 이노이즈는 어떤 비전을 갖고 있나요? ‘디자인을 하면 당연히 돈을 벌고, 돈을 벌면 회사가 굴러가는 게 순리’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산업은 흥할 때도 있고 흥하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경제가 안 좋을 때 회사를 운영한다면, 마구 덤핑하면서 디자인을 팔아야 할까요? 지킬 것은 지키면서 회사를 어떻게 이끌지 고민했습니다. 이제야 궤도가 조금 보이는 것 같습니다. 운이 좋게도 우리 회사가 4~5년 전에 홍역을 크게 앓은 적이 있어요. 경쟁이 심해지고 인건비가 저렴해지면서 여건이 어려워졌지만 이노이즈는 우리만의 UX 철학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이 산업이 이미 포화상태가 되어 시장이 어렵지만 우리가 만 들고 있는 디자인은 여전히 인정받고 있습니다. 아름다움 다음, 철학 다음이 무엇일지 고민하며 준비한다면 계속 살아남을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좋은 사장이자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저희와 관계를 맺는 사람들에게 일 잘한다고 인정받고 싶어요.
Profile 박희성 1970년생. 이노이즈인터랙티브 공동 대표.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FIX 대표, 이미지드롬 이사를 거쳤다. 웹 디자인 1세대로 서태지닷컴, 지오다노, 닉스 등의 감성적인 홈페이지를 제작해 화제를 모았다. 시각 디자인 그룹 진달래 동인이다.
홍순기 1974년생. 이노이즈인터랙티브 공동 대표. 홍익대 시각디자인과를 졸업했다. 보라존 디자인 실장, FID 뉴미디어사업 본부장을 거쳐 2003년 이노이즈를 설립했다. 이노이즈(Innoiz)는 혁신(innovation)이란 바로 이런 것임(is)을 보여주겠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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