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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1-30
    가로수 마네킹 / 강서연란제리도 망사스타킹도 액세서리도 색 바랜 바바리코트도 한데 뒤엉켜있던 가판대 가을 정기세일을 마치고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의 마네킹들이 서 있다가로등 불빛이 훤하게 조명을 비추는 쇼윈도 은행나무의 옹이가 생식기처럼 열려 있다저 깊은 생산의 늪에 슬그머니 발을 넣어보는 저녁어둠이 황급히 제 몸을 재단해 커튼을 친다첫눈이 내린다칼바람을 따라가며 천을 박는 발자국들재봉틀 소리에 맞춰 나무의 몸속에서도 바람개비가 돌아간다 길도 불빛도 사람들도 왕십리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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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6-12-03

    낙화 / 이형기

    가야 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봄 한철
    격정을 인내한
    나의 사랑은 지고 있다

    분분한 낙화(落花)
    결별이 이룩하는 축복에 싸여
    지금은 가야할 때

    무성한 녹음과 그리고
    머지않아 열매 맺는
    가을을 향하여
    나의 청춘은 꽃답게 죽는다

    헤어지자
    섬세한 손길을 흔들며
    하롱하롱 꽃잎이 지는 어느 날

    나의 사랑, 나의 결별
    샘터에 물 고이듯 성숙하는
    내 영혼의 슬픈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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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9-0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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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0-05-07
    여우난골족 / 백석명절날 나는 엄매 아배 따라 우리 집 개는 나를 따라 진할머니 진할아버지가 있는 큰집으로 가면얼굴에 별자국이 솜솜 난 말수와 같이, 눈도 껌벅거리는 하루에 베 한 필을 짠다는 벌 하나 건너 집엔 봉숭아나무가 많은 신리(新里) 고무, 고무의 딸 이녀(李女), 작은 이녀(李女)열여섯에 사십(四十)이 넘은 홀아비의 후처가 된 포족족하니 성이 잘 나는 살빛이 매감탕 같은 입술과 젖꼭지는 더 까만 예수쟁이 마을 가까이 사는 토산(土山) 고무, 고무의 딸 승녀(承女), 아들 승동이육십리(六十里)라고 해서 파랗게 뵈이는 산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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