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을 때가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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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온다는 것은 / 오세영
첨부파일 https://imweb.eond.com/poem/8570
봄이 어떻게 오던가
밤새 속살거리는 실비를 타고 오던가
새벽부터 짖어대는 딱새들의 울음소리로 오던가
얼음 풀려 묶인 목선 띄우는 갯가의 밀물로 오던가
먼 남쪽 푸른 바닷가에서 온
완행 열차의 기적 소리로 오던가
막 도착한 그 열차는 실어온 동백 꽃잎들을
축제처럼 驛頭에 뿌리고 떠나는데...

봄이 어떻게 오던가
먼 산 눈 녹는 소리로 오던가
깊은 계곡 얼음장 깨지는 소리로 오던가
묵은 옷들을 빨래하는
강가 아낙네의 방망이질 소리로 오던가
가슴에 하이얀 손수건을 단정히 찬
신입 초등학생들의 그 경쾌한 등교길로 오던가
거리의 좌판대에 진열된 봄나물의 향기로 오던가

봄이 어떻게 오던가,
밤새 앓던 몸살이 그친 이 아침
온몸에 피어오르는 열꽃으로 오던가
첫 고백을 들은 여인의 귓 속에 어리는 속삭임으로 오던가
첫 사랑에 빠진 여인의 푸른 눈동자에 어리는
별빛처럼 오던가
먼 바다를 건너서 온
사내들의 푸른 힘줄에서 불끈 솟구치는
혈류로 오던가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 이름을 불러 준다는 것이다
이름이 없음으로 아무것도 아닌것에
이름이 없음으로 있는것이 아닌것에 이름을 주며
이제 그 아무것이,
그 무엇이 되도록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처녀라 불러주어 처녀가 되는
처녀와 사내라 불러주어 사내가 되는 사내
봄이 온다는 것은 그 무엇이 된다는 것이다
새록 새록 눈 녹는 소리에
여기저기 언 땅을 밀치고 솟아나는 새순들

봄이 온다는것은
누군가 흔들어 깨워준다는 것이다
아침에 늦잠든 아이를 어머니가 흔들어 깨우듯
잠든 돌멩이를 흐르는 물이 깨우고,
잠든 나무는 따뜻한 봄볕이 흔들어 깨운다
흔들어 깨워서 마음이 되는 나의 마음
봄이 온다는것은 누군가 흔들어 깨워
의미를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바람에 하나씩 눈뜨는 나무의 잎새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를 그리워 한다는 것이다
무심해서 아무것도 아닌 것을
무심해서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그리움은 누구에겐가 고귀한 것으로 만들어 준다
흐르는 물속의 돌멩이는 먼 하늘의 흰 구름을 그리워하고
갓 피어난 여린 새싹들은 태양을 그리워 한다
봄이 온다는 것은 누군가를 가치있게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아른 아른 취해 아지랑이 먼 하늘
황홀하게 우러르는 꽃들의 눈빛

봄이 온다는 것은
아득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그리움만으로 아무것도 아닌 존재를
이젠 내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제 당신의 것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내가 곧 당신이 된다는 것이다
사랑함으로서 비로소 내가 되는 나
봄이 온다는 것은 아득히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이다
가지에 물 오르듯 아아, 초록으로 번지는 이 슬픔

코멘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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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온디
    소방서 식당에 봄이 온다는 것은 이란 시구절이 한 귀퉁이 달력에 적혀져있는게 너무 좋아서 찾아 보았다.
    오후 08:3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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