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읽을 때가 참 좋다
글 등록하기 | 내글 관리하기 | 연재글 | 보관함
소풍갑시다 / 허수경
첨부파일 https://imweb.eond.com/poem/19037
그대가 나의 오라비일 때, 혹은 그대가 나의 누이일 때
그때 우리 함께 닭다리가 든 도시락을 들고 소풍을 갑시다,
아직 우리는 소풍을 가는 나날을 이 지상에서 가질 수 있어요,
우리는 그 권리가 있어요.

소풍을 가는 날,
가만히 옷장을 보면 아직 개키지 않은 옷들이 들어 있어도 그냥 둡시다.

갈잎 듣는 그 천변에서 우리는 다시 돌아올 것이므로, 돌아올 것이므로,
그날  그 소풍에 가지고 갈 닭다리를 잘 싸고 포도주 두어 병도 준비하고,
그대가  내 오라비로만 이 지상에서
그대가 나의 누이로만 이 지상에서 살아갈 것을 서약은 할 수 없을지라도
오래 뒤에 내가 그대를 발굴할 때,
그대의 뼈들이  있을 자리에 다 붙어 있었으면 합니다.

그 이름 없는 집단무덤에서 우리는 얼마나 머리 없는 뼈들을 보았던가요
울지 맙시다,
작은 소녀가 웅크린 그 부엌 안에 작은 불을 켜며 라디오를 켜며
서약한 많은 나날들이 연빛 웃음처럼,
소녀 또한 연등빛 웃음처럼
저 폭약 많은 오후에 사라져갈지라도

우리들이 먹은 닭다리가 저 천변에 햇빛에서 아득해질지라도
오 오 소풍을 갑시다,
울지 맙시다
코멘트 0
접기/펴기 | 댓글 새로고침
 
 
Total 124 articles in 1 / 7 pages
번호 제목 제목 조회 수 날짜날짜
124 [시] 그대를 향한 내 마음은 - 제이미 딜러레 3205 2003/11/05
123 [시] 너에게 묻는다 - 안도현 3420 2003/11/06
122 [시] 너를 기다리는 동안 / 황지우 3387 2003/11/14
121 [시] 뼈아픈 후회 / 황지우 7726 2003/11/14
120 [시] 사평역에서 / 곽재구 2939 2003/11/19
119 [한시] 오늘은 너와 뜨거운 밤을 보냈다. 3980 2003/11/24
118 [시] 기다렸던 사랑이 오지 않을 땐 / 황청원 3286 2003/11/25
117 [한시] 《하여가(何如歌)》 4670 2003/11/27
116 [한시] 《단심가(丹心歌)》 4233 2003/11/27
115 [시] 하덕규 시집 - 내 속엔 내가 너무도 많아 4239 2003/11/27
114 [시] 원태연, 이정하, 김소월, 윤동주, 서정윤, 문향란, 지예, 류시화 3731 2003/11/27
113 [시] 애인 / 이응준 3346 2003/12/06
112 [시] 거미 / 김수영 4142 2003/12/07
111 [시] 노수부의 노래 [32] 27721 2003/12/09
110 [시] 알바트로스 / 샤를 보들레르 3783 2003/12/09
109 [시] 승무 / 조지훈 3145 2003/12/15
108 [시] 황동규 - 즐거운 편지 [4] 12964 2004/03/11
107 [시]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노희경 3026 2004/04/23
106 [시] 김용택 시인 3367 2004/04/24
105 [한시] 창 내고자 창을 내고자 이내 가슴에 창 내고자. 6282 2004/05/22

해시태그 디렉터리

오늘의 핫게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