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별은 그 때 우리가 모두 짐작하고 있었던 일이었다. 단지 누가 먼저 말을 꺼내는지의 문제였고
함께 할 수 없다는 것을 서로가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사랑 이후 찾아오는 이별에 대해 아플만큼 아파봤던 사람들이었고
오랜 시간 계속되었던 사랑의 기억 속에서 이별 이후 찾아오는 아픔의 기억을 잊고 지낸 사람들이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최선을 다해 사랑을 했다. 모든 것을 감내하며 지켜내려 했던 안타까운 사랑이었고
불쌍한 연인이었다. 인연이었기에 이별의 그늘 또한 길 수 밖에 없다. It waz in Shiraz.
헤어진 후 이별을 이야기하며,
그 때 우리가 사랑했던 건 최고의 사랑이 아니라 두번째 사랑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성적으로 말해서 우리는 우리 생애 두번째로 아름다운 사랑을 했던 것일까.
본능이든 이성이든 말장난 같은 이야긴 집어치우고라도 어쨌든 이별한 후엔 사랑과 이별에 대해선 어쩔 수 없이 더 이상 소용이 없다.
이별을 믿어야 한다는 말도 안되는 감정을 애써 이성적이라 변명하며 인정하자고 서로에게 종용한다.
언제나 사랑이란 건 최고의 사랑이다. 이별 또한 사랑의 연장이다.
사랑 없인 이별이 있을 수 없다.
밴드의 시대 음악은 정말 미친다.
밴드의 시대 3라운드 장르파괴에서 구남과여라이딩스텔라와 몽니의 대결 중
몽니의 바보처럼 살았군요는 정말 음악도 명곡이지만 무대 자체도 미친 무대였다.
항상 인생이란 후회하는 것 같다. 지나고 나면 내가 정말 바보 같이 살았다는 것을 깨닫곤 한다.
지금 인생이 얼마나 한심한지 후회만 하다 결국 지나고 나면 후회했던 행동들을 다시 또 후회하는 바보 같은 삶을 살고 있다.
이 허무한 고리를 어떻게 끊을 수 있겠나.
다만 '사는 게 니나노' 할 수 밖엔,
산다는 건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즐거울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살 수 밖에.